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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역사탐방

굴곡많은 정조의 삶.

by 잔잔한 하루. 2022.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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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정조와 의빈 성씨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알아봤었습니다.
궁금하시다면 밑의 링크를 눌러주세요.
정조와 의빈 성씨의 사랑이야기.

그렇다면 왕으로써의 정조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우선 정조가 백성을 위한 정치를 시작하기 전의
모습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총명함이 남달랐던 정조.



1752년 10월 영조의 둘째 아들인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형이었던 의소세자가 3살에 요절한 후
태어났는데요.
영조는 의소세자의 장례를 치르고 3년이 지나서야
세손으로 책봉하였습니다.

정조는 원손 시절부터 총명함이 남달랐으며 1761년
4월 성균관에 입학하게 됩니다.



아버지의 죽음.



정조는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죽음을 감내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었습니다.

1762년 할아버지인 영조가 아버지인 세자를
폐위하고 뒤주에 가둬 죽였습니다.

장례를 치른 후 사도세자의 장인이었던 홍봉한은
영조에게 상소를 올리게 됩니다.
병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겁니다.
영조는 금등고사를 이야기하며 이 일을 더 이상
언급하지 못하게 합니다.






학업에 열중한 세손 시절.



1762년 사도세자가 사망한 후 혜경궁 홍씨는
영조에게 부탁을 하게 됩니다.
바로 세손인 정조는 경희궁에 머무를 수 있도록
간청한 것인데요.
죄인으로 죽은 아버지로부터 정조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그 간청으로 1776년 국왕으로 즉위하기까지
경희궁에서 지낼 수 있었습니다.

1764년 영조의 첫 번째 아들이었던 효장세자의
양자가 됩니다.
효장세자의 빈이였던 효순왕후도 정조가 태어나기
전 사망하는데요.
그렇기에 양자가 되는 건 왕위 계승을 위한 형식적인 절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조는 엄격한 관리로 학업에 열중하였습니다.
하루에 3번 서연을 여는 강행군을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또 무예에도 큰 관심을 보였는데요.
그중에서도 활쏘기를 즐겨하였습니다.
실력도 50발 중 49발을 명중시키는 날이 10번이
넘는 기록이 있을 정도입니다.






대리청정을 시작하다.



정조를 제거하려는 세력들은 세손 시절부터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더 자세를 낮추며 일거수일투족을
신경 쓰면서 지냈습니다.

1775년 영조의 나이 82세의 노환으로 더 이상
정무를 보는 게 힘들어집니다.
대리청정을 맡기지만 노론은 이를 반대하는데요.

당시 세손의 나니는 24세로 옥새까지 세자궁으로
옮기며 대리청정을 시킵니다.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신하들은 어떻게든
대리청정을 막으려 했습니다.
이때 홍국영이 이들을 탄핵시키며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정리.



정조 하면 은연중 떠오르던 모습은 의빈 성씨와의
사랑이야기,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죽음의 트라우마,
효심 이 정도 생각이 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모습은 정조의 일부분일 뿐이었는데요.
이런 트라우마를 이기고 백성을 위한 뜻깊은 정책을
펼쳤는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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