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분은 고종입니다.
사람들은 고종을 비운의 왕 또는 힘이 없는
무능한 왕으로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종의 일대기를 살펴보며 한 나라의 왕으로써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 강화도 조약의 전 후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흥선대원군의 아들.
고종은 누구나 알듯이 흥선대원군의 아들입니다.
이하응과(흥선대원군) 여흥 민씨 사이의 둘째
아들인데요.
흥선대원군은 남연군의 넷째 아들인데, 남연군은
인조의 셋째 아들인 인평대군의 6대손입니다.
하지만 사도세자의 셋째 아들인 인신군의 양자로
입적되는데요.
그럼 남연군은 법적으로 영조의 증손주가 되면서
고종은 헌동과 동항렬이 됩니다.
흥선대원군은 가장으로써 무능했기에 고종은
경제적으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 덕분에 왕위 계승을 받다.
하지만 흥선대원군은 가장으로 써 무능했지만
정치적인 야망은 꽤 높았습니다.
정조 시대에는 직계 후손이 끊기고 철종마저
후손이 없어 왕위 계승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시기였습니다.
이런 궁의 상황을 흥선대원군은 절대 놓칠 리가
없었습니다.
흥선대원군은 신정왕후 조씨를 자주 찾아가
친분을 쌓으며 왕위 계승에 조금씩 다가갑니다.
고종시대의 크고 작은 사건들.
고종이 재임기간 동안 서양에서 침범하는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 일에 대해 몇 가지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병인양요.
고종 3년 때에 대원군은 러시아를 견제하고자
프랑스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합니다.
하지만 프랑스 주교의 반대로 프랑스 신부
9명을 처형하고 천주교도 수천 명을 박해한
병인박해가 있었습니다.
병인박해의 보복으로 1866년 9월 프랑스의
군대는 강화도를 침략하였지만 한성근,
양헌수에 의해 격퇴당합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강화도에 있는 외규장각을
불태우고 관련된 유물들을 약탈해가는
병인양요 사건이 일어납니다.

신미양요.
1866년 7월 미국의 상선인 제너럴셔먼호가
대동강으로 올라와 통상을 요구하면서 평양의
주민들에게 약탈과 살육을 자행하게 됩니다.
이때 평안도 감사 박규수와 평양의
지역민들에 의해 선박이 불타고 모두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를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라 불립니다.
신미양요는 이 사건이 일어난 5년 뒤인 1871년에 일어났습니다.
역시나 강화도로 침략하였으며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를 연달아 공격하고 광성보에서
어재연이 전사하고 맙니다.
미군은 자신들의 승전 의미로 수자기를
(강화도를 수비하던 조선군 지휘관 어재연 장군이 사용하던 군기) 탈취합니다.
정리.
우선 고종의 강화도 조약 전의 일대기는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그늘에 많이 가려져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업적도 고종의 업적이면서 곧
흥선대원군의 업적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오롯이 흥선대원군의 업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님 고종의 정치적인 이념에 흥선대원군의
조력이 합쳐진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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